2019/04/29 00:27

고기로 태어나서 뜯긴 페이지

"생각을 해봐. 딱 한 달 키운다고. 애네 하루가 우리 사람들 하루가 아냐. 3일이면 이놈들 평생의 10프로라고. 10프로."

 육계가 얼마나 짧은 삶을 사는지 이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끝까지 살아남아 정상적으로 도축당하는 육계도 부화하자마자 쓰레기차에 쏟아붓는 병아리에 비해 단지 한 달을 더 살았을 뿐이다. 지난 수십 년간 고기들의 삶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은 사육 공간을 넓히려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시도였다. 동시에 품종을 개량시키려는 노력은 빨리 살을 찌워 사육 기간을 단축시키는 (대단히 성공적인) 시도였다. 공간의 감옥은 그대로인 반면 시간의 감옥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본격적인 품종 개량이 이루어지기 전인 20세기 중반만 해도 도축 적정 무게에 닭은 3개월, 돼지는 10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동물에게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주는 일은 충분한 공간을 보장해주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어느 정도가 충분한 시간인가? 여기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동물이 삶의 사이클을 한 차례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 정도가 적당하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동물이 자라서 성적으로 성숙해지고 교미를 하고 그 새끼가 태어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말이다. 
 하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엔 현실적으로 큰 어려움이 있다는 게 분명한 사실이다. 첫 번째 장애물은 생산비다. (중략) 축산업에서는 생산비 중 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사육 기간을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씩 연장하는 것은 단순히 생산비가 치솟는 문제를 넘어선다. 수익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야 가능한 일이라는 말이다.
 두 번째 장애물은 맛이다. 닭이나 돼지는 사육 기간이 길어지면 고기가 질겨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소비자들이 동물 복지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과 그렇게 생산된 고기를 즐길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중략) 그래서 이들은(미국의 칠면조 동물복지 농장) 자신들의 고기를 구매하는 식당과 개인 소비자들을 위한 새로운 요리법을 개발했다. 맛은 어찌 보면 생산비나 시설 문제보다 더 큰 어려움일 수도 있다. 동물 복지가 미각과 연결된다면 요식업계의 변화까지 동반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동물에게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은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그렇다 해도, 지금부터 조금씩이라도 동물들이 갇혀 있는 시간의 감옥에 대해 고민해볼 가치는 있다. 

432-4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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