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13 19:33

호혜성 사회에 대한 판타지 구르고 줍지는 않지요

 호혜성 사회에 대한 요구가 종종 끔찍해질 수 있는 이유는 공동체로의 새로운 가능성, 공유의 토대를 점진적으로 넓혀갈 수 있는 그 긍정적인 국면과 전혀 다른 관점에 놓여질 때 벌어진다. 자본의 매개를 벗어나 인간적인 연결을 지향하는 '호혜성'이 복지 예산 부족 부분을 채우려는 '동원'과 '권고'에서 이루어 질 때, 우리는 이것을 새로운 착취 구조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조금 진부하게 가정주부의 경우에—여기서 남/여를 불문해주길 바란다—사회가 호혜성 원리를 강조할 때, 그들의 노동의 강도는 커지지만 그만큼 그 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평가되어 지지 않는다. 이미 무임금으로 가계 경제를 지탱해온 노동활동은 긴 역사 끝에 호혜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임금으로 자연스럽게 정착된다. 이처럼 복지의 필요를 무시한채로 난발된 호혜성 논리의 대상들은 '미래(또는 발전이라 부른다)를 위한 희생물'로 자주 이용되었다. 즉 어떤 교류—상부상조라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로맨스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이 더 혹독한 겨울을 스스로들의 힘으로 버텨내기를 사회는 강요했던 것이다.

 

 예술계에도 이와 같은 논리 속에 속해있는건 아닌지 자기 곱씹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위문'이라는 논리로 예술을 해석하는 정책자들의 무관심까지는 그렇다치고 위로라는 눈물이 많은 의심 속에서도 종종 필요한 사실도 그러하다 하자. 하지만 교육이나 환경 조성이 우선되야 향유할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가? 무턱대고 호혜성의 논조 아래, 예술가는 저임금으로 착취되고 시민에게는 문화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모욕감을 심어주는 절망적인 구도를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예술은 여유시간에 누리는 사치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통해 많은 자본의 필요없이 누릴 수 있는 삶의 한 요소여야 한다.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또는 자기 삶을 유지하는데만 벅찬 삶들일 경우, 예술을 즐기는 자본과 시간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예술에 관심도 없고 무지하며 감수성도 없다는 식의 재단만큼 위험한 것이 있을까. 작업을 보며 영감을 받는데 누구 하나 다를거 없다. 삶의 디테일들을 풍요롭게 채우는데 목마른 사람들은 많은데 너무 비싼 비용과 시간을 요구하는 기획들만을 예술로 지원하는가? 평론가들이 아닌 관객들이 수준낮은 작업을 자유롭게 비판해서 무대에서 끌어내려야 하며, 폭리를 취하는 문화예술계의 기업들의 오만함을 공격할 때 그들의 목소리가 함께 한다면 개인적으로 예술가로써 더 기쁠거 같다. (낭만적인 재생산을 꿈꾸는 것같아 의심이 들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위해 먼저 교육이 바뀌어야 하고, 각 지역 사회에 문화예술을 지원할 정책들이 다채로워야 하며, 예술을 유리성에 집어넣고 취급하는 돈의 흐름에 대한 일반화에 대항해야 한다.        

 

 한 가지 더 덧붙이면, 남한 사회가 가진 군대라는 시스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만약 현재 군대처럼 젊은이들을 동원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아마 남한의 적은 인구로는, 미국과의 합작에도 불구하고 방위 쳬계를 세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의 20대 남자에게 주는 임금으로는 가장 최저 임금을 주고 4대 보험조차 없는 2년짜리 직장으로의 군대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남한이 휴전상태라서? 만약 이들을 모두 직업군인으로 전환할 경우, 국가재정은 군사비로 인한 적자에 몰릴테다. 휴전 상태이기 때문에 상시 준비하는 태도로 경계해야 된다는 정부의 지침은 이처럼 저렴하게 노동력을 동원하는 호혜성에 호소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는가? 또한 전쟁상태를 가시화하지 않기 위한 이유도 있다. 전쟁 상태를 가시화할 경우, 사회적 불안이 증폭되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국가적 신뢰도가 하락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종종 사회적 불안감을 다른 불안감으로 덮기 위해, 또는 다시 국민으로 호명하기 위해 전쟁의 일면들을 언론에서 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휴전선, 그 외 많은 경계 지역은 안전한 곳이 절대 아닐 것이다. 연평도해전 등이 시사하는 조각들이 어떤 큰 퍼즐에서 튀어나왔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정치계는 평화시를 강조한다. 왜? 위험부담이 커지면 위에서 말했듯이, 국가라는 조직 자체가 위기에 처하며, 위험부담이 늘어날수록 군대 내의 임금 인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어린 시절 국군 아저씨에게 편지를 쓰던 아이들이 군대에 가는 이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책이 있다면 나도 알고 싶다.